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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대로마사][로마인이야기] 로마 공화정

오늘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1권 중,

제 2장, 로마 공화정 정리.

로마인 이야기 1권

2장 로마공화정은 브루투스가 로마의 공화정 시대를 연

기원전 509년 부터

로마가 루비콘 강 이남의 이탈리아를 제패한 기원전 270년의 기간을 다룬다.

로마는 마지막왕 타르퀴느우스를 마지막으로

공화정의 창시자 브루투스의 제안으로

임기가 1년 밖에 안되는 2명의 집정관이 나라를 다스리는

공화정 시대가 된다.

계기를 요약하면

마자막 왕의 시민 위에서 군림하는 거만한 태도와

여론을 잘 이끌어 시민들의 동의를 얻은 브루투스의 시너지 인 것 같다.

초기 집정관은 브루투스가

여론 몰이에 성공하며 연이어 집정관 재선에 성공하고

로마에서 쫒겨난 선왕 타르퀴니우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브루투스 후의 집정관은 푸블리콜라가

연이어 재선하였는데,

이탈리아 내의 에트루리아들의 도시국가들과 싸우면서

라틴족을 적극적으로 로마로 유입하게 애쓴다.

대표적인 예는 로마의 명문가가 되는 클라우디우스 가문이다.

5천명이나 되는 일족이 이시기에 로마로 이민 왔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는 이 시기에 불문율의 집성이었지만,

민중들의 요구에 의해 성문화를 하기 시작한다.

법치 국가 로마의 시작이랄까.

이미 로마 주변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롯한 정치 선진국들이 있었기에

로마는 시찰단을 파견하여 성문화를 진행하게 된다.

또 이 시기에 로마는 주변 국가와 계속 전쟁을 하면서

점차 빈부 격차가 커지게 되는데,

전쟁으로 집을 떠나서 농지가 놀게 되는 평민들과

전쟁으로 집을 떠나도 노예들이 농사를 짓는 귀족들의

빈부 격차가 커지게 되고

이것이 평민들의 파업, 즉 병역 거부로 이어지게 된다.

로마는 평민들의 병역이 아니면 당장 주변 국가들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로울수 없어서

기득권은 타협 하기 시작 한다.

이 결과로 로마에 호민관이라는 관직이 생기게 되는데,

호민관은 평민계급에서만 선출될수 있고,

집정관이 내린 결정에 거부권을 가지며,

신분 상의 면책특권도 인정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농지에 대한 갈등은 귀족과 평민들의 갈등이 심해서

전투가 끝나면 귀족파와 평민파로 나누어서 싸우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로마가 베이를 점령한후

베이를 점령한 카밀루스 집정관 과의 갈등으로 번지고

결국 베이로 시민들이 일부 이동하는 결정이 이뤄지고 집정관 카밀루스는 추방된다.

그런데 그 직후, 켈트족이 로마에 침입해 온다.

그러나 그 당시 편성된 군단은 수도 적었고 급조 된 탓에

적에 패배 했다.

그리고 로마는 켈트족에게 철저히 파괴 당했다.

기원전 390년 로마는 공화정으로 이행된 후 밑바닥으로 다시 떨어진다.

켈트족은 식량이 고갈되, 로마와의 협상에서 금을 받고 돌아갔지만,

로마는 동맹들이 등을 돌렸고, 도시도 파괴 되었다.

로마는 그 시기 정치적으로도 과도기 였는데

집정관이 아니라 6명의 군사 담당관이 로마를 다스리는 시기였고,

이는 전쟁에서 불합리했기에 독재관을 임명하기 바빴다.

그리고 다행히 좋은 인재 카밀루스가 있었기에

로마는 군사적인 위기를 넘긴다.

그리고 정치적인 변화는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 법의 성립이었다.

다시 2명의 집정관 제도와

모든 공직을 평민 출신에게 개방하는것

중요공직을 경험한 사람은 원로원 의석을 제공 받는것.

그리고 로마는 대외적인 전략도 이시기에

기존 라틴 동맹 보다 로마 연합을 가게 된다.

동맹국 간 동맹을 금지하고 로마와만 동맹을 하게 되고

군사적인 지휘는 무조건 로마가 맡는 것으로 하여

로마 중심적인 관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탈리아 중부를 재패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중남부에 걸쳐 있던

삼니움족과의 전쟁.

삼니움족은 이탈리아 남부의 산악 민족이었다.

산을 잘 알았기에 산을 이용한 게릴라 전을 펼쳤고,

로마군은 평원에서 펼쳐지는 전투에 익숙 했기에

고전 할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로마의 방식대로 주변에 식민지 도시를 건설하고

그 사이를 차근차근 이어가면서 삼니움족을 고립시키고

결국 로마 동맹에 가입시키게 된다.

그리고 로마는 드디어 이탈리아 남부로 진출하게 되어

그리스 폴리스들과 마주 하게 된다.

로마의 선단이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계 폴리스 티타룸에

피해 간것을 타렌툼이 승무원들을 모두 살해하면서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타렌툼은 그 당시 최고의 용장으로 소문난

에페이로스의 피로스를 스카웃한다.

로마와 피로스의 첫 전투는

피로스의 승리로 끝났으나

전투로 로마에게 등을 돌릴것으로 예상한 로마의 동맹국들은

등을 돌리지 않아 피로스의 예상이 빗나간다.

피로스는 이에 로마의 강화를 제의 하는데,

이때 은퇴한 아피우스 클라디우스가

원로원에 나와 연설한다. 우리집 마당에 밀고 들어와 눌러 앉아 있는 적은

교섭 상대가 될수 없다고.

피로스는 교섭을 거절하고 나온 로마에게 또 승리했지만

시칠라아 섬의 지원 요청에 거기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또 카르타고와 전쟁하면서 병력이 줄어든다.

그렇지만 로마는 그 시기에 또 병력을 꾸준히 수혈하여

결국 피로스를 자신의 왕국으로 돌려 보낸다.

이 사건으로 루비콘 강 남쪽으로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완성한다.

기원전 270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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